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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20:39:18 조회 : 92         
   아들 만들기 200520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아들 만들기(호세아 11:1-4)

음성 동영상 Youtube

 링크 : https://youtu.be/IV413WLjlM8, Hit:19
 이근호 20-05-20 21:18 
아들 만들기 

2020년 5월 20일          본문 말씀: 호세아 11:1-4

(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11:2)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서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성애를 알려주십니다. 이스라엘로 아들로 간주해서 그동안 돌보아 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니 이는 하나님의 부성애를 거부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우리 인간들 세상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견이 잘 수긍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집안에 아들이 있어 때로는 공부도 하고 때로는 컴퓨터 게임도 합니다. 때로는 밖에 나가 축구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들이 아닌 적은 없는 법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적 아들은 그 몸체 자체로서 아들로 확정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이런 원칙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애굽’이라는 배경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아들’이란 필히 ‘애굽’이라는 배경도 더불어 등장되어야 합니다. 애굽이 없는 곳에는 아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실은 더 나아가 말씀드리면 이러합니다. ‘애굽이라는 나라의 존재도 아들의 존재를 위함이다’고 말입니다.

‘애굽나리’의 존재 의의가 필히 ‘아들’의 의의와 결부되어서 규정되어야 합니다. 애굽나라란 세상 사람들 생각하기에 유일한 현실입니다. 애굽 나라에서 살던 방식이 유일무이한 인간들의 생활방식입니다. 인간들에게 있어 ‘애굽같은 나라’외에 다른 나라는 인간의 머리에 없습니다.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과 애굽이들이나 아니면 애굽 주변의 나라사람이나 모두다 한결같이 생각했던 바입니다.

애굽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애굽나라의 노예로 살면서도 달리 다른 나라로 갈 생각을 하지를 못했고 할 필요조차 없었던 겁니다. 이 지상에 애굽같은 나라말고 다른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애굽나라에는 ‘하나님 아들’은 없습니다. 애굽나라에 신이 있지만 그 신이란 애굽사람들이 평소 지니고 있던 세계관과 우주관을 전부 다 담겨져 있는 신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한곳에 집약해서 담아놓은 것이 ‘신(神)’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세계관과 우주관이 형성되어 있기에 최종 가치의 집대성한 초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이치가 모아놓아진 그 가치의 성격은, 본인 자체가 이래나 저래나 의롭다는 겁니다.

옳고 정당하다는 겁니다. 그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 어떤 판단을 내려도 이 세상 현실의 모든 변화는 결국 ‘나는 옳았다’를 증명하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의 신성에 반박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이치는 오직 주님의 의로우심에 집약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기껏 알고 있는 현실관의 한계가 애굽으로 마감되는 이유는, 그 당시 애굽이 제일 큰 나라이고 따라서 ‘최고의 모델’로서 애굽나라가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식은 곧 남을 깔보는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그 어느 인간도 예외가 없는 ‘남을 깔보기 위해’ 살아갑니다. 비록 남에게 밟히면서 겨우 살아가는 남을 깔보는 정신은 그 어떤 지경에서도 살아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이 최종적으로 의롭다고 본성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 보기는 모든 것이 ‘나로 시작해서 나로 말미암아 나에게 되돌아오기’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들의 눈에는, 눈에 보이는 애굽과 애굽나라같은 나라들이 전부이기에 그런 세계관부터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애굽나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없는’ 아들 만들기‘에 나서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십니다. 사명이 있었습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출생지에 뒤늦게 재결합시키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시작점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하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애굽의 사람으로서 모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아들 출생이,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자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애굽나라에서 잘 사는 히브리인들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되기’가 목표입니다. 우상을 믿는 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에다 모든 가치를 다 담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실어두시기로 했습니다. 마태복음 2:14-15에 보면,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필시 ‘애굽’으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애굽은 그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못 빠져나오는 세력권이 작렬하는 곳이고, 거기서 ‘아들되기’란 아무도 꿈못 꾸는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에 아들은 없이 오직 예수님만이 아들로 시작을 하는 겁니다.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을 주님은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냥 여행 왔다가듯이 거르던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을 빠져나올 때, 그날 밤은 애굽 전역이 통곡의 밤이 되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빠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물리적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집에는 물리적으로 끈적끈적한 피라는 액체가 묻혔고, 실질적으로 애굽사람의 모든 집에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장자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는 지금도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제적 일입니다. 그냥 인간 머리 속에만 있는 개념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이 실제성은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광야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이 척박한 환경을 맞이하면서, 대자연이 자신의 생존의 적이 됨을 알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자신을 아들되기 하신 그 분이 이 대자연환경까지도 적절하게 직접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해야 했습니다. 이 특수함이 부각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 자신의 우상성을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사명감이 중요합니다. 아들되기는 사명감과 더불어 움직입니다.

사명감으로 증거될 것은 요한복음 1:12-13에 나와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세상을 이길 힘이 곧 ‘아들되기’에 다 집약되어 있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의 아버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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