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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6 12:37:54 조회 : 437         
   # 어느 선교단체 선교사의 글 입니다. 이름 : 이건호(IP:175.223.27.163)   
wmm선교단 선교사의 글 입니다. 이 글을 읽고 복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선교단체 선교사의 글) #존재의 공백1 존재감은 부르심에서 온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훈련받는 자리로 부르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게 된다. 복음 이전의 나를 볼 때 존재적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 마음에 존재의 공백이 있었다. 하나님 없는 상태, 목마름 그것은 존재의 공백이었다. 나는 존재의 공백이 무엇인지를 안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어느 날 돌아가시면 그 가정에 남는 것,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 이것이 존재의 공백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중심이었는데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 것.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존재 안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목마름, 그것을 바로 존재의 공백이라 한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 이 때 존재 안에 나타나는 현상이 목마름이다. 존재의 만족 어느 날 나를 찾아오신 분, 십자가로 부르셔서 내 안에 오셔서 존재의 공백을 채워주셨다. 그분이 함께 하는 것. 그 무엇도 원치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존재의 만족. 사랑, 신뢰 그분만을 추구한다. 그분만을 갈망한다. 그분을 아는 것이 유일한 존재의 이유이다. 전적무능, 전적의존적인 나는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아먹는 자이다. 존재의 만족, 나는 나로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나, 그래서 그리스도인인가 보다. 행복하다. 존재의 공백 2 얼마 전부터 존재의 공백을 느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실 일은 없는데 왜 이런 느낌일까? 스스로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목마름이 원인이었다. 생명처럼 붙들고 있던 묵상을 가끔 놓치기도 한다. 복음과 기도가 결론임에도 24365기도도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기도 한다. 어느덧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내 안에 존재의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목마름이 생겨난 것이다. 존재의 공백. 주님이 부르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것이 지금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존재의 공백1) 제목부터 모순이다. 존재 곧 있음과 텅빈 공백은 서로 상이한 개념이다. 존재는 존재고 공백은 공백이다. 두 개념을 합치는 것 자체가 거짓, 모순이다. (존재감은 부르심에서 온다.) 부르심은 존재를 삭제시키는 것이다. 부르심을 모르니 인간의 상상으로 자기 암시, 확신을 하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으면 존재는 사건이 돼버린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훈련받는 자리로 부르셨을까?) 마귀가 불렀다. 훈련 따위는 없다. 죄인을 훈련한다는 것은 지옥불에서 더욱 예수님 욕을 하기 위한 주님의 작업이시다. 오직 죽음으로만 주님을 알 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게 된다.) 답을 얻었다는 것이 죄다. 인간의 신체가 답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 이전의 나를 볼 때 존재적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 복음 이전의 '나' 라는 것은 없다. 다 거짓이고 허상이다. 존재적 목마름 자체가 마귀가 주는 거짓말이다. 존재가 없는데 어떻게 목이 마를수가 있는가? 그리고 복음 이전의 나는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가 자아를 다룰 수 없다. (내 마음에 존재의 공백이 있었다. 하나님 없는 상태, 목마름 그것은 존재의 공백이었다.) 이것은 누구나 갖는 상상이다. 하나님만 갖다 붙인 것이다. (나는 존재의 공백이 무엇인지를 안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어느 날 돌아가시면 그 가정에 남는 것,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 이것이 존재의 공백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공백을 이야기 하는데,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도, 아는 것도 있다는 뜻인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인간의 앎은 모르는 것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중심이었는데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 것.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존재 안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목마름, 그것을 바로 존재의 공백이라 한다.) 목마름, 존재의 공백이라는 표현은 구원 받고 싶어 환장한, 살고 싶은 절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 이 때 존재 안에 나타나는 현상이 목마름이다.) 그 목마름이 죄다. 이런 말을 하면 그 목마름을 채워주는 자기네들의 교리가 안 먹히게 된다. (존재의 만족) 이거 복음인데.. 정말 그런가? 인식인가 사실인가 보자! '인식이 사실마저 이겨버린다.' 최근 뉴스 기사에 나온 내용인데 딱 이 말과 같다. 허상인 인간은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자기 인식으로 모든 것을 출발한다. 실존주의, 현대주의, 후기현대주의의 산물이다. (어느 날 나를 찾아오신 분, 십자가로 부르셔서 내 안에 오셔서 존재의 공백을 채워주셨다. 그분이 함께 하는 것. 그 무엇도 원치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존재의 만족. 사랑, 신뢰 그분만을 추구한다. 그분만을 갈망한다. 그분을 아는 것이 유일한 존재의 이유이다.) 정말인가? 그러면 그냥 살아야 한다. 죄 짓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식으로는 이 말이 괴기스럽게 들릴 것이다. (전적무능, 전적의존적인 나는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아먹는 자이다. 존재의 만족, 나는 나로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나, 그래서 그리스도인인가 보다. 행복하다.) 죄 짓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을 안다면 이 말들은 다 사실이다. (존재의 공백 2) 두 번째 글 시작. 자기 조작, 연출인가? 정직인가? (얼마 전부터 존재의 공백을 느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실 일은 없는데 왜 이런 느낌일까?) 왜 안 떠나셔야 하는가? 내가 지옥에 가면 왜 안되는가? 고정은 우리에게 사용되거나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내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목마름이 원인이었다.) 눈치 챘을것이다. 나의 종교적 열심이 지쳐버리고 재미가 없어진 것을.. (생명처럼 붙들고 있던 묵상을 가끔 놓치기도 한다.) 무엇을 붙들게 되면 정신병자가 된다. 인간은 무엇을 붙들면 결국 스트레스를 받고 자살하게 된다. 그냥 살면 된다. (복음과 기도가 결론임에도 24365기도도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기도 한다.) 복음과 기도가 결론인 것은 어느 경전, 종교 서적에 기록되었는가? 24365는 생떼 시위다. 유난떠는 인간은 늘 바쁘다. (어느덧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내 안에 존재의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목마름이 생겨난 것이다. 존재의 공백.) 24365 못해서? 친절하게 복음을 좀 이야기 하자면 공백이 복음이다. 공백을 십자가라고 부른다. 공백은 없음이며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흔들리는 것이 공백 곧 복음이다. (주님이 부르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것이 지금 내가 이곳에 온 이유이다.) 내가 누구인가? 결국 이 글들은 자기 존재 입증을 위해, 자기 존재를 유지시켜 주는 어느 집단을 소개하려고 하는 영업이었음이 탄로났다. 나(예수님)를 믿는 자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위의 '존재의 공백'이라는 글들이 다 자기 조작, 거짓이었음으로 들통날 때다. 그것이 이미 말씀의 의미가 덮쳐진 증거다. 믿음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공백이 복음이다. 복음은 우리가 지옥에 간다는 사실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식이다(겔5:13).
 우리교회 17-09-20 00:16 
답변 잘했네요. 하나님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자들입니다. 더나아가서 결국 돈 뽑아내고 자신의 생활영역을 확보하려데 노림수를 품고 있습니다. 진리는 관심이 없고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생존이 곧 진리로 돌아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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