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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12:55:12 조회 : 1459         
   어느 성도의 질의와 답변 이름 : 이근호(IP:119.18.83.69)   

(질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oo입니다.. 그동안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목사님 설교 인터넷에 올라온거 보면서 이거저것 많이 알게 되는거 같아서 너무 기쁩니다...

자꾸 제가 할려고 하니깐 안된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무나 귀한 말씀이기 때문에 여자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막 다투게 되고 답답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결정적으로 좀 깊게 얘기하게된 이유가 교회 나가는거 때문에 생겻거든요... 저는 진짜 말씀이 아닌거같아서.. 자꾸 거부하게되고.. 여자친구는 그래도 교회를 안나가는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여자친구가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죄가 너무 무겁다고.. 내가 가짜라는 것과 내가 이단이라는것을 정말 싫어하더라고요.. (사실 예수님외에는 다이단인데말이죠...)

너무 부정적이시고 ...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냐... 하나님은 우리인간를 너무 사랑하셔서 창조하셧고 .. 또 우리에게 죄안에서의 자유함을 주셧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위해서 주신 달란트로 열심히 살면서 범사에 감사하며 늘 기뻐하며.. 영광을 올려야된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다고요.. 제가 생각할때는 여기 조차에도 오류가 잇다고 생각을합니다... 또 삼위일체에 대해서 나왓엇는데.. 여자친구는 삼위일체는 우리가 알려고해선 안된다.. 이걸 부정하는건 이단이다... 제 기억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안되고 예수님을 믿어야된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신게 생각납니다(그 유산 상속에 관한내용이요..)... 삼위일체는 곧 하나님이 예수님이다 라는 뜻이아닌가요 ??.,, 질문하고 싶엇던게 너무 많앗는데.. 늦은시간이라.. 궁금한게 있으면 또 메일로 질문하겟습니다.. 그럼 안녕히계세요 .. 답변 부탁드릴게요

(답변)

먼 타국에서 고생이 많군요.

여자 친구가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여자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해주세요. 죄보다 사랑이 더 무게가 나간다고.

복음을 접할 때는 항상 그러한 거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랍니다.

중요한 성경 구절을 설명하겠습니다.

1. 요한복음 17: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택한 자녀가 따로 있고 그 자녀만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말씀, 즉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라고 했을 때 이 사랑의 대상은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2. 로마서 9:16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말씀은, 구원이란 인간들이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열심히 바르게 산다고 해서 성사되는 게 아니라 항상, 언제는 하나님의 긍휼(불쌍히 여겨주심)에 의해서는 성립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예로서 로마서 9:11-12에 나옵니다.

“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즉 인간들이 태어나지 전부터 이미 구원될 자와 그렇지 아니하는 자가 정해져 있으며 구원될 자에게만 영생이 주어지는 식으로 하나님의 복음은 전파됩니다.

사도행전 13:48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전도하면서 하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여기에 보면,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더라’입니다. 그러니까 본인들이 실력이나 신앙심이 좋아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작정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구원되는 자입니다.

3. 갈라디아서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란 골라잡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온갖 말씀’을 ‘항상 지키지’ 아니하면 계속 저주를 받도록 주어진 것이 율법입니다. 따라서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구원이고 축복이고 영생이고 없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2:16-18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완벽한 의인이 아니라 누구도 천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완벽한 의는 인간의 행함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본인이 이루어놓으신 성과를 집어넣어서 발현을 시킬 때 가능합니다. 그 능력이 곧 십자가 죽음을 반복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성도 안이 예수님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현장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도 ‘행함으로 의롭다’를 추구하는 자는 다음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로마서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4. 삼위일체이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경에 ‘삼위일체 믿으라는 것’은 구원의 약속이 아닙니다. 구원의 능력이 거기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왜 사도가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식이나 용기나 신념이나 열심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즉 구원은 지식의 문제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느냐’를 보십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왜냐하면 지식이나 신념이 아니냐 하며는 지식이나 신념은 어디까지나 자기 속에 유지할 때만 효과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시간이 흘러가든지,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언제든지 바뀌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만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본심으로 주저없이 되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삼위일체를 안다든지 믿는다든지 하는 것이 그저 치장거리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 속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을 성령님을 통해서 집어넣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설사 예수님 때문에 수모당하는 경우를 만나더라도 사랑하는 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이론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오직 “저는 예수님을 사랑해요”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숨어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5-36)

예수님 사랑으로 인하여 다른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최종적인 가치에서 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해주십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7-39)

최종적 책임자는 교회 목사도 아니요 아는 사람이나 일가친척이나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아직도 예수님을 최종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하나)이시오 삼위로 계신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계신다’는 말과 ‘위(位)’라는 말과 ‘한 분 (혹은 하나)’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인위적으로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못하기 이전에 이 세 가지 단어 (존재, 위, 하나)를 인간들이 스스로 설명을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핑계대기를 "그냥 믿으라“고 우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심판을 행사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죽으심의 효력의 유무로 심판하십니다.

5. 그렇다면 왜 교회에서 삼위일체니, 바르게 살아야 하느니 라는 주장을 자꾸 늘어놓는 걸까요?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교인들 본인들이 어떻게든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어서는 천국가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서 본인들이 익히 아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티를 내는 겁니다. 즉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천국가고 악한 일을 한 자는 지옥간다 식입니다. 선하다는 증거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례가 되고, 악한 일을 했다는 증거는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안되면 그것이 저주받아서 그러하다고 이미 교인들 본인들이 마음 단단히 먹고 교회 나오기 때문에 교회도 그들을 붙잡아 영업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들이 요구대로 설교할 수가 밖에 없는 겁니다. 고객이 왕이니까요.

둘째로, 교회 목사나 장로들은 이미 교회 자체가 자신들이 자존심의 가치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 교회가 칼 운영대로 커져야 자신들의 가치도 덩달아 커지는 겁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교인들의 희생과 봉사와 돈(재산) 입니다. 돈과 자리 채우기, 새 회원모집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고 그들이 스스로 짐작들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주의 몸된 교회에 충성 여부에 따라서 구원이 끝까지 가는지 아니면 중도 탈락하는지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열심히 시간바치고, 돈 바치고, 몸바쳐서 교회를 융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선한 일 많이 하면 천국 가서도 상급을 많이 받고, 선한 일이 적으면 천국 가서도 상급이 없고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자손손 대대로 지지리 궁상으로 살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사세요. 구원은 비록 믿음으로 갈 수 있어도 복은 여러분들이 얼마나 교회의 충성하느냐에 따라 비례해서 많아집니다. 이 사실을 어린애같은 믿음으로 무조건 믿으세요!”라고 선전해대는 겁니다.

따라서 교인들의 잘못된 우상숭배성과 목회자들이나 장로들(혹은 오래 돈을 낸 교인들)의 자존심을 건 사업성 멘탈에 의해서 교회가 천국을 가로 막는 이단 단체가 되어 가는 겁니다.

6. 신앙생활이나 거룩한 생활은 딱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랑에는 심판받는 두려움이 없기에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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