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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9:34:03 조회 : 2691         
   약속과 말씀과 십자가(의) 이름 : 장호연(IP:14.33.53.95)   

목사님, 대구 강의 중에 사도행전 2강 - 말씀 스스로가 이루는 약속

이걸 봤는데..

그럼 예수님의 죽음은 약속에 대해 죽은 우리를 (죄가 곧 나고, 내가 곧 죄인 우리, 죄의 생명)

우리와 동일시 되신 죽음으로, 죽으시고, 살아나셔서

부활로 약속에 대해 산 자로 만드셔서 (삼위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 사건) - 의

말씀을 이루는데 참여시키기 위해, 말씀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시기 위해 (성도됨, 성전됨, 상급)

말씀으로 (언약으로? - 약속의 말씀) 약속을 이루시니까요..

이 일에 우리를 동참시키는 것..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집단, 나라)였고, 지금은 교회고...

이렇게 보면 되는건가요?

 

 

 이근호 13-12-06 01:33 
 장호연 13-12-12 14:22 
목사님 혹시 약속하고 말씀하고 위치가 바뀌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바뀌면 어떻게 되나요?
 이근호 13-12-15 12:57 
답변이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논리적 순서를 정하게 되면 관찰자(인간)의 시간 의식도 반드시 개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본래의 내용보다는 ,관찰자의 역사 인식이 자체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실제로는 말씀이나 약속의 범주는, 인간들이 때마다 노출하는 죄악의 성질을 폭로하는데 어느 것이 적합한가에 따라 말씀이 큰 범주로 작용할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약속이 더 큰 의미 범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평할 수는 없습니다.
 장호연 13-12-16 16:06 
답변감사드립니다.
저는 약속과 말씀의 위치를 정하려고,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정해보려고 하였는데
그 자체가 오류였군요...
그 능력 조금 알게 되니 그 위치를 정해서 - 즉 내 맘대로 의도대로 써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는
승천하신, 약속과 말씀이신, 그분의
생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우리 안에서 간구하시는...?
 이근호 13-12-16 17:50 
주기도문의 내용은 우리 입장(자리)에서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안목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서 아들로의 이동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인간에서 아들로의 이동은 몸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인간으로서 익히 아는 모든 기도의 내용도 삭제당하게 됩니다. 인간들의 기도는 기존의 언어사슬에서 발생되는 통용된 의미를 가지고 조립됩니다. 예를 들면, 하늘의 뜻이란 이 지상에서 없는 추가적 요소를  의미하고,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이란 이 상태가 성도가 사는 이곳에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오류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류가 아닙니까? 하늘의 뜻이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신 것이요, 뜻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십자가 사건이 반복되어 성도로 하여금 이 땅에 대한 심판이 속히 진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오직 예수님만이 참 아들이요 구세주요 심판주임을 증명하는 사태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장호연 13-12-19 15:50 
그럼 이게 기도의 내용이자 (창세전) 약속의 내용인가요?

기도하는데, 예전처럼 해주십시오 되게해주세요 라고 하지 않고
말씀(만?)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 말씀이 만약 약속을 성취하는 도구라면...

오늘도 받은 말씀으로 기도하는데..
그냥 약속만 남습니다, 약속만 선합니다..
이런 기도가 나와요.. (약속이 나의 의??)

기도할때는 이해가 되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괜히 불안하고 막막하고..

내가 계속 죄인인게 드러나는 것?
약속이 임할수록????



근데 이 싸움은 진리싸움이자나요?
그래서 생명이 바뀌어야 하는거고...
 이근호 13-12-20 01:39 
기도하면서 맨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으로'을 붙이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나의 이름'이 삭제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해서 본인이 개입할 여지도 없게 됩니다. 결과를 기대할 자격이 없는 겁니다.
 장호연 13-12-20 10:52 
그럼 예수님의 이름을기대하게 돠겠네요
그분이 내자격으로 죽으실뿐 아니라 부활하셨으니까요
(주님만 기대하게 되는)
그가 내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이근호 13-12-20 15:39 
예수님의 이름이란 이름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에 걸맞는 기능과 활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기능과 활동은 나의 활동과 기능을 죄악된 것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지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들의 자기 이름(자기 명예와 존재성와 자기 의와 자기 가치)을 포기하도록 하십니다.
 장호연 13-12-31 11:12 
목사님... 그러면..

1. 그럼 약속을 위해서 (이루기 위해서) 그 옷(인내 - 예수 그리스도의 옷, 성령의 생각...?)이 필요한 건가요?

2. 약속(성부와 성자의)이 이루어지는 자리, 약속의 자리에서 사단은 패배하는건가요? (십자가의 자리)

3. 그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 임마누엘인가요?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 하겠다.)
 이근호 14-01-03 17:48 
세상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위하여 모두 등장된 형편입니다. 등장되고 난 뒤에는, 각자 독자적인 자기 자리를 사수하고자 합니다. 곧 스스로 각자가 마치 주님인 처럼 행세합니다.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신을 집어넣은 현실관, 곧 종교라는 겁니다. 아무리 신을 주입해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노릇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일한 성경 말씀과 개념을 가지고 바꿔치기에 나서시는 겁니다. 즉 "너를 위한 약속이나  구원이나 영생이나 천국이나 임마누엘이나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세 개의 질문에다 예수님의 주되심과 연결시켜 보세요.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한 약속이며 예수님을 위한 성령이며 예수님을 위한 사단의 패배이며 예수님을 위한 임마누엘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점을 받아들이기에 자신의 자리가 매일같이 교체되어 사라져감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필요해서 일어나는 상황인 것을 인정하시면  귀하께서 질문하신 세 가지 질문의 저절로 해답이 되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주님으로 만들어놓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답니다"  사단이나 성령도 바로 이 작업, 이 약속을 위함입니다.
 장호연 14-01-06 21:49 
약속의 주, 주인, 주님되신, (스스로 그렇게 되시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의 내주(성령), 복음사건(십자가)

이렇게 표현해 봤는데, 왜케 껄끄럽지요?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에게 필요해서?)
 이근호 14-01-07 08:43 
모든 피조세계는 예수님의 주되심을 보여주는  전개영역입니다.
 장호연 14-01-16 12:03 
그럼 성령은 왜 오신 걸까요? 보혈의 가치를 알게 해주시기 위해?
 이근호 14-01-16 16:48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가 어디에 근거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피의 위력이 구원될 자에게는 사랑으로 이어짐을 알려주는 겁니다.
 장호연 14-01-23 12:25 
1. 그럼 약속(약속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본인, 그 자체) 인가요?

2.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근거는 어디에 근거? 언제나 항상 영원히 그 피(희생의 피)?
피의 위력이란 용서의 위력을 말씀하시는건가요?

3. 그 피와 예수님의 주되심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근호 14-01-23 13:29 
약속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창세전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펼침 속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게 되어있고 거기서 나오는 피로 인하여 사죄가 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장호연 14-05-21 20:53 
그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다 용서받은 세계에 사는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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