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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6 21:10:12 조회 : 3806         
   고백함으로 죄가 더하는 것에 대하여... 이름 : 프리맨(IP:61.75.180.92)   
 

목사님 감사합니다.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정죄감이 없어지게 하셔서 말입니다.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 죽으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죄 밖에 나오지 않는 저의 모습에 많이도 정죄감에 힘들었습니다.

사회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나의 성격과 기질 때문에 이타적인 삶을 살지를 못했습니다.

기도의 생활이 연속적으로 될 때는 그나마 선한행위가 나왔지만

리듬이 깨어지는 현실들이 많다보니 그것이 연속적이지 못하니

오히려 더욱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참 힘들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를 짓지 않고 싶어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제가

죄인임을 알게 되었기에 죄에 대하여 정죄감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피공로를 고백하며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근데... 이런 나의 자유가 방종도 조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해야 하지요?

예전에 담배를 피우는 것도 양심에 찔리던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피더라도 양심에 찔림이 없으니 편안하게 피는 것 같습니다.

술을 먹는 환경에서는 예수 믿는 자라고 핍박을 받고, 괴로웠는데

지금은 회사사람들도 변했다고 하면서 저를 오히려 좋아합니다.

곁에 여성이 앉아서 술을 먹게 될 때는 전에는 갈등으로 뛰쳐 나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진짜로 죄의 욕심대로 맡겨 버리고 싶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행해야 하지요?

아직은 예수님이 행하여 주시지 않고 있으니... 뭐라 해석하며 행동해야 할지 정말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같은 성도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하고, 목사님 말씀따라 살려니 죄를 택하는 것에

양심의 찔림도 무시하고 하게되니...

삶의 행로에서는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죄를 더욱 행하게 합니다.

죄인임을 고백하여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난 고백을 하는데

결국 내가 죄인인데... 곁에 나를 보는 자들은 예수님을 욕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된 언약의 성취를 이루는 것일까요?

너무 리얼하게 질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전 급합니다.

 강구만 10-07-06 22:30 
귀하는 죄가 뭔지도 모르면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고 뛰쳐나올때 마귀는 신나서 박수칠 겁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믿는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죄인들 입니다. 양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 선물 주신 분으로 함께 날마다 죽습니다. '나'에게서 나대신 죽으신 한 분에게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정죄감이 없는 것을 감사해서는 않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피를 위해 내가 범죄하였음을 감사하시기를 빕니다.(고후4;10) 목사님 보다 제가 먼저 나선 것 같아 죄송합니다
 프리맨 10-07-06 22:49 
글의 내용은 간단한 것 같은데 복잡하게 얽혀 버리네요...
제가 죄도 모르고 있다면...
그러면 제가 하는 행동들이 죄가 아니란 말입니까?
너무 어렵게 설명하지 마시고 범인들이 알 수 있도록 표현해 주세요.
그럼 구만님이 아시는 죄는 무엇인지요?
죄도 모른다고 하시구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고 뛰쳐 나온다는 뜻은 무엇을 말하는지요?
저는 저를 믿지 않아서 예수를 구했습니다만...
이목사님의 설교를 보면서 저의 모습을 고백하는 것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공로를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정죄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저의 모습이
고백이후 더 쉽게 다가온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말을 한 것입니다.
제가 죄를 더하게 되었다고 해서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과 연합하여 날마다 죽었다고 고백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피를 위해 내가 범죄하였음을 감사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내가 범죄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이 감사하라는 해석인가요??
글고 님이 나서는 것이 잘 못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네요.
저의 고민에 대한 답이 명쾌하지 아니할지라도... 말에 어폐가 너무 심하십니다.
뭐 이건 논리적비약이라도 할 수 없고...;;
 강구만 10-07-06 23:11 
모든 성도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 입니다. (시51:4)
 프리맨 10-07-06 23:34 
죄에 대한 답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친히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한 것이 죄라고 성경에 말하지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그렇다치고...

구만님은 생활에서 다가오는 행위의 선택이 분명 있을겁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으신지요?
죄를 지어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죄의 무게에 짓눌려 보지 못한 자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런지요?
답변 하나라도 제 마음을 생각해서 성실하게 해주시면 합니다.
 이근호 10-07-07 00:18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살아있음 자체가 예수님의 뜻과 은총에 의해서 살아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더라도, 술을 먹더라도, 지금도 병원 입원실에 불치병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시선에서 보면, 그런 힘조차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보일 것입니다. 바로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건강한 몸을 자신의 쾌락을 즐기는데 투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프리맨 10-07-07 01:12 
목사님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의 죄성을 인정을 하였습니다.
내 몸을 쾌락에 맡기고 싶지 않음을 주님이 더 잘 아실 것을 믿습니다.
연약한 자, 생명이 꺼져 가는 자를 비교해서 나 자신의 건강함과 살아 숨쉬는 생명이
있음을 감사한다고 해서 중독 같은 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저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와 그와 함께 옛 사람이 죽은 것을 믿으려는 것보다
더 큰 바라봄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죄를 즐기려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즐기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인데 그것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은 내가 죄인이기에 그렇지만...
남은 인생이 과연 이런 죄의 실상을 예수님이 하신 걸로 인정하며 살기가 쉽지 않는 것이 고민이지요.
제가 기성교회에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던 것이 죄를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리 이리 행하라 하였지만, 잠시는 이길 수 있어도 완전치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들 또한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자신의 행함을 인정치 않는 것이 저에겐 복음이었습니다만
결국은 저는 오히려 마음의 정죄감도 없이 방종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나만 이런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깨닫지 못한 것이 있지 않나... 마냥 햇갈립니다.
전 결코 쾌락을 즐기려는 마음 없습니다. 그러나 악만 행하려는 것이 내 속에서 살아난다는 것인데
무조건 죄인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기엔 내 속이 너무 답답합니다.
목사님 복음이 진정한 자유를 준다 하지만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요?
이거 내 스스로 속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지요?
목사님은 잘 모르실겁니다.
평신도들이 삶에서 맞닥뜨리는 선택에서 오는 갈등을요.
 한진영 10-07-07 06:14 
프리맨 님의 고민 드러내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육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복음의 단면을 얼른 수용하였다가 이내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 있지요.  하지만 복음을 진정 '듣게' 되는 일이 주님의 은혜로 발생하면,  주께서 끊임 없이 이제 훌훌 털고 떠나자고 채근 하시는 것을 발견하게됩니다. 그토록 미련 많던 이 세상에서 발 디딜 땅 한평 얻지 못할 나그네로 있는 자신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란게 원래 본전 다 털려도 자기가 별 재미 없어 시시할 때서야 화투판 털고 뜨게 되지만, 그전에라도 서슬퍼런 하늘 남편에게 멱살잡혀 끌려 나가는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땅의 양극을 오가는 것은 떠남이 아닙니다. 주님은 제 3의 길 벡타의 좌표를 제시하는데 우리는 늘 바리새인이냐 창기냐 양쪽을 오락 가락하며 자기의나 점검하기 바쁜 것 같습니다. 실컷 들여 다 봐야 경계선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모습만 발견할 다름 아닐까요. 결국 복음으로 말미암아 진짜 애통하게 되는 것은, 날마다 팔색조처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키면서까지 징그럽게 이 땅을 떠나기 싫어하는 아담의 근성 자체를 우리가 결코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됨이 사실은 가장 큰 기쁨입니다. 홍수라도 꺼뜨리지 못하는 사랑의 불을 그 때서야 진실로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프리맨 10-07-07 10:27 
진영님 감사합니다.
이목사님의 말씀하시는 지향점을 발견하신 것 같군요.
떠남과 끌려가는 일을 경험함을 제겐 아직 발견치 못하는 것이 제일 큰 아쉬움이구요.
이렇듯 하늘 남편에게 부드러운 음성이든 완력의 멱살잡이든 내게 간섭하심을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
그러나 실로 과연 몇명이 이런 경험들을 현실에서 하고 있을까요?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되어질 수 있을까요?
일반교회에서 성령충만 받았다고 하는 자들의 경험은 육신의 강렬한 체험을 동반한
(이게 마귀의 역사든 자아의 관념에서 오는 자신만의 욕구든) 그런 경험에서 오는 영혼의 흔들림도
세상과 육신의 죄의 끊임없는 속박에 일시적 현상만 기억할 뿐인 것을...
그래서 경험 보단 믿음이겠지요.
님 또한 저의 질문의 요지를 벗어난 설명을 해 주시는군요.
육을 입은 존재가 이 땅을 살 때 겪는 신앙인의 갈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와 떠남이라는 개념으로 신앙인의 현실의 삶을 부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주기도문에도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을 이루는 방법은 모르나 그 주체는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라는 것을 부정하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이로서 자신의 모습을 되내어 보는 것은 자기의 의를 점검하는 행위자라고만
치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 나의 자아의 의의 채점인 것일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데 나의 의가 막고 있는 것일까?
고민해 본 적은 없으신지요?
저는 이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내 자신의 의를 버리려 육신의 죄를 인정하고 무기력하다고 고백할 수록
그리스도의 의가 나를 통해 실현되어 지는 것은 과연 없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의 의문이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 됨을 아는 것은 예수를 믿고 부터입니다. 철저히 죄인 됨을 인정하게 된 것은 이목사님 설교로 부터입니다.
이것으로 죄인의 속성을 더 알려 하면 뭣 하겠습니까? 내가 죄인 그 자체로 늘 나타내고 있는데요.
진영님은 자신의 죄인됨이 실감나게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울 뿐이고, 늘 하나님께 송구스럽지요.
다만 자랑은 합니다. 그런 나 안에 그리스도께서 와 주신 것을요.
저는 죄인 된 저에게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믿고 있기에
홍수라도 꺼뜨리지 못하는 사랑의 그불이 나를 조명하기에 일상의 선택에서 갈등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는 나의 의를 점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에 대한 미련일 수도 있지요.
분명한 것은 사랑의 불을 비쳐서 광야의 인생길을 비쳐 주는 것이 영원한 나라를 이끌기 위함이시기도 하겠지만
만나와 메추라기와 같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서 하나님만 바라는 삶을 살게 하시며 구별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 땅에서 체험케 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절대 죄인 됨만 아는 것으로 그래서 예수만 필요하다는 은혜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일평생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닐겁니다. 분명히 님의 말때로 제 3의길 벡타의 좌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님과는 다른 것이겠지만 내 평생에서도 나아가야할 벡타의 좌표가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한 내 안에 두신 소원인 벡타의 좌표...
그 첫걸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을 살 때 순간마다의 선택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성재필 10-07-07 16:02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서 하신 일이 왜 몸바쳐 십자가에 피흘려 죽음인지 안다면, 프리맨처럼 세상속의 자신이 나아갈 길에 마음을 두는 것이 왜 심판받아 죽어 마땅함 인가를 알아가는 것이 평생의 즐거움이 될 것이고, 자신과 세상에게 주께서 이렇게 하심이 참 놀라운 능력이라 찬송하며 살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주님의 종이 아니라 자신의 종으로 살고 있기에 죽어 마땅한 이단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않고 주님의 선택으로만 주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수없는 일을 하는 3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마다 선택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순간 주님의 선택하심을 자신의 죄인됨속에서 바라보며 주님의 십자가 피약속을 바라봅니다.
 프리맨 10-07-07 18:02 
재필님 감사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본다. 십자가의 주님의 피를 바라본다.
그래요 죄인됨을 인정하지만 죄인이 되어 죽어 마땅한 것을 알아가는 것에 평생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겠구요.
왜냐구요? 죄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한 줄은 모르겠지만 죄에 대한 개념이 크기에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죄인이 심판 받아 죽어 마땅함을 알아간다는 것 보단 이런 죄인을 살려 주신 은혜가 평생의 즐거움이 되고 찬송이 되겠지요.
그리고 주님의 종이 아니라 자신의 종으로 살고 있다는 판단기준은 어디에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질문은 명확합니다.
하루를 사는 것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질문을 너무 리얼하게 하다보니 그 부분을 겪어 보지 못해서 이해 못하실 수 있겠다 싶어
간단한 예를 들겠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합니다. 좀 늦게 일어났기에 바삐 운전을 해야 합니다.
신호등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기에 그냥 지나쳐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는 신호를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마음은 그냥 가자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의 무능력 때문에 괜하게 부서에서 욕을 당합니다.
뒷담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편에 그러지 말라 합니다.
집에 들어 왔습니다. 스트레스 만땅인데 아내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잔소리를 합니다.
내 기질대로 음성 높이고 무안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참아라 합니다.
이게 뭐 도덕적인 것을 가지고 고민하야 하겠지만..
이런 것으로 부터 해서 여러가지로 마음에 부닺침을 갖게 됩니다.
왜요? 죄를 알고 선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님처럼 말하면 철저히 죄인이 죄 밖에 나오지 않는데 무얼 고민하냐 하겠습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라 하겠습니까?
절대 선이신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치려는 자들을 다 돌려 보내시고 뭐라 하셨습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요8:11)
이것이 제 마음에 떠오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죄의 짐에 눌리는 것 같습니다.
담배, 술, 여자 이런 부분들은 이전에 신앙생활에서는 이런 마음의 갈등을 내가 이겨보려 했었습니다.
완전하게 이길 수 없었지만 때론 이겨내곤 했습니다.
근데 이목사님 말씀을 따라 죄인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하고 나면서 부터
담배와 술, 여자들 앞에서 나의 죄에 대한 탄식 그리고 이런 나때문에 죽으셨구나 하면서
도리어 안해야 하는데 나의 연약하고 죄된 모습을 이해하시는 주님의 긍휼 앞에 정죄감이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마음에 갈등하며 육신의 소욕을 따랐다면 이젠 갈등과 두려움 없이 그렇게 따라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왜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가 죄 밖에 지을 수 없음을 알고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했을까요?
여인이 죄를 지을 때마다 니가 죄인임을 알아라고 역설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래서 또 죄를 지을 때 정죄감에 사무치게 빠져 예수님만이 필요함을 알게 하시려는 주님의 깊으신 뜻이었을까요?
어휴 이제 그만해야겠습니다.
어쨌든 죄인이니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아니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었고 의인이 되었기에 의인의 삶을 살려 하든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만이 되는 것이겠지요.
모두들 감사합니다.
 성재필 10-07-07 19:02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프리맨이 겪는 고충을 포함해서 이모든 사태가 모든 인간이 믿음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다. 물론 이렇게 하신이는 바로 주님이며 그것이 주의 뜻대로 된 사건입니다.
 성재필 10-07-07 19:04 
그리고 이곳은 실명을 밝히고 교제하는 곳이 되길 개인적으로 희망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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