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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4 07:57:12 조회 : 1396         
   Re..꺽으신 뼈가 뭡니까? 누구입니까? 이름 : 이근호(IP:)   


시편에서 '뼈' 자체는 인간을 지칭하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시편 34:20이 그러하고 시편 35:10절이 그러하고 또한 시편 51:8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시편에서, 특히 다윗의 시에서 어떤 경우에, 또는  어떤 취지로 인간을 '뼈'로 보느냐 하는 점은 다윗의 신앙 정신을 파악해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에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고난 받는 인간상'입니다. 


그런데 거룩하게 고난받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고생해야하고 당연히 뼈로 돌아가야 하고, 멸망해야 하고 멸절 되어야 될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보면서 인간의 최후의 모습을 인간의 본질을 간주하면서 그 자리로부터 인간성을 제대로 규정짓겠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보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생 가운데 특정 사건에만 국한시키려는 의도가 없고 도리어 그 반대로 성도의 전 인생에 있어 그 어느 한 순간에서도 은혜가 철수되는 법이 없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실히 해두기 위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들은 모두 '뼈'라는 공통된 운명 안에서 한 통속이 됩니다.


즉 같은 성도라면 너와 나를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다같이 '뼈'에 해당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시편 51편은 다윗이 어떤 입장에 있느냐 하면 자신의 '뼈'에 불과함을 잊어버리고 죄를 유발시킨 가해자의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다윗의 본질을 제대로 지적하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될 때, 다윗 본인의 죄악된 행위로 말미암아 밧세바와 그 가족이 자신의 죄로 인해 망가졌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경에 있는 자신에게 하나님은 자신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했느냐가 관권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제사법과 관련시킵니다. 즉 하나님은 단지 율법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시는 식으로 이스라엘 내부와 다윗 에게 직격탄을 날립니다. 


다윗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행하는 '제사 행위' 그 자체가 곧 제사일 줄 알았습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이 벌리시는 제사행위에 이미 동원되었음을 깨닫지 못했기에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제사의 주체자가 제사법을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 본인인 줄 착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벌리시는 제사가 성전에서 이벤트로 이루어지는 그것이 다 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가문 전체의 움직임 그 자체를 통해서 실질적 제사법이 완수되도록 유도하신 것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죄를 지은 인간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다윗의 범죄로 인해 인생된 자들은 모두 다윗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제물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슬초'가 삽입된채 진행되는 사건으로서,  밧세바 간음 이후의 모든 그 일련의 불상사를 다윗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꺽으신 뼈'라는 것은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제물과 연계시켜 볼 때에, '죄없이 억울하게 죽게 된 '상황에서만 적용시킨 인간상입니다. 즉 희생 제물 역할을 한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에 의해서 꺽으졌다면, 죄진 인간은 마땅히 죽어없어져야 하기에 구태어 따로 꺽어질 필요조차 없는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죄 자체가 이미 꺽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꺽으진 뼈'는 죄를 닦아주는 '우슬초'의 기능과 연계된 하나님의 일관된 조치로 봐야 합니다.   


다윗의 어린 아이가 죽습니다. 물론 다윗이 그 아이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했는데 아이가 아직 숨을 거두기 전에, 이미 다윗은 꺽여진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반성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다윗이 스스로 겸손해 한다고 다윗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사건을 중심으로 벌리시는 하나님의 제사법 완성으로 인해서 다윗의 죄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당연히 여기서 다윗을 대신해서 희생 제물이 될 자가 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어린 아이를 두고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관된 죄씻음 작업의 연속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죽음을 '뼈'로 간주해서 다윗과 같은 동질성 속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 개입한 불쌍한 인생(어린아이의 인생)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어이 그 어린아이를 죽이신 것은 모두가 다윗 자신의 행동을 가지고 진정한 죄 용서의 제사법 완성이 무언가를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주체적 조치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지요, "하나님의 제사나 번제를 원하지 않고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심령' 자체로만 죄 용서가 성립되지 않기에 그 짝을 이루는 희생제물도 겸하게 다윗의 자기 범죄 사건 안에서 제시하는 것이 온전한 체사법 완성에 합당한 조건이 됩니다. 은혜란 거기에서 나오지 결코 '다윗 개인의 상한 심령됨'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제사법 완성에 동원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성도는 자신의 죄악된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꺾으진 뼈'를 아울러 찾아내는 것이 관권이 되겠지요.    


기존의 성경 해석이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중심으로 바라볼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하나님이 말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 인간들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을 갖느냐 하는데 초점을 두고 성경을 있습니다.


물론 번역 자체는 문자대로 번역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을 담겨 있느냐 하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서 그런 곡해의 여지가 있다 손치더라도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번역자는 문자대로 번역하고서는 해석에 대해서는 더 책임지지 않는 선으로 물러나 버린 상태입니다. 


따라서 기존 번역에 하나님 나라 사상으로 무장되었다고 단정하려는 증거는 찾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단 기존 신학 전반이 '인간 구원역'을 정당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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