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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4 00:35:33 조회 : 1391         
   Re..조규현 장로님? 2주전에 들려준 이야기 다시 한번 더 해주세요 이름 : 조규현(IP:)   
 

루터와 에라스무스




Erasmus(1466-1536)는 Luther(1483-1546)보다 나이가 17년 위다. 에라스무스는 당시 존경 받는 대학자이며 그의 말은 영향력이 대단하였다. 루터 자신도 에라스무스의 풍부한 언어와 문학에 대한 지식은 놀라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업적에 관하여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 신학적인 견해 가운데 적지 않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부터는 그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경계심이 앞서게 되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이단자이고 이교도이며 무신론자”라고 주저 없이 말하였고,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를 싫어 한다” 또 “이 불쌍한 친구 에라스무스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기독교의 반쪽도 이해 못하고 있으며 신앙의 기초도 모른다고 공박하였다.




루터는 ‘교회의 바벨론 감금에 대하여(1520)’라는 논문을 통하여 교회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었다. 이런 루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마르틴 루터가 교회에 대하여 너무 비판적이기 때문에 에라스무스가 여기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언급해 주길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루터가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는 행위를 보고 너무 과격하다는 평을 하면서, 1524년에 ‘자유 선택에 관한 강론’이란 제목의 논문이 나온다.


루터는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1525년에 ‘노예 의지론’이란 제목의 논문이 나온다. 여기서 루터는 인간의지는 하나님에게 예속되어 있으며 선택의 부자유, 의지의 노예 상태를 주장하고 있다. 즉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으며 인간의 자유 선택의 의지란 있을 수 없으며 구원의 대상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고 주장한다.




에라스무스는 자유 의지의 존재가 확립되었다고 보고 자유선택을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향배하는데 적용하는 인간 의지의 힘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유 의지나 하나님의 은혜는 상호 작용의 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고 순수한 필연성에 의해서만 행동한다면 그 결과에 따른 무책임성과 반율법주의에 빠지며 또 어떤 상급이나 심판을 받을 아무 조건을 갖지 못한다고 하였다. 인간의 자유 선택의 결과에 따라 선인과 악인을 보상하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행동이 정당화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유의지의 행동 자체도 일체 하나님께서 준 것이라 말한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교황 교회의 권위와 전통을 옹호하였다.




루터가 처음 이글을 보았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쓰레기’같은 것이라 말하고 그것에 대하여 귀한 시간을 허비할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 논문이 점차 크게 반응을 일으키자 루터는 4배에 가까운 분량으로 글을 써서 응수하게 된다.


루터는 인간의 공적에 의한 구원은 허무맹랑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며, 의인을 위한 보상과 악인을 위한 심판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을 받기 위해 의를 구한다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의도 상급도 모두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자유 선택에 대한 루터의 사상을 재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공적의 유무에 의하여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시며 인간이 행하는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결정을 결코 좌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유는 곧 은총의 자유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자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또는 구원이나 저주와 관련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전혀 선택의 자유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지나 사탄의 의지에 종속되는 포로요 신민이요 노예이다.




사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무력성을 강조한 것이 루터를 위시한 여러 종교 개혁자들의 공통점이었다. 이것과는 달리 인간의 노력과 공적을 강조한 것은 후일의 알미니안주의였고 반(半)펠라기안주의였다. 이러한 견해는 신약성서에 근거한 기독교가 아니요, 신약성서에 준한 유대교이다. ‘노예의지론’은 이런 모든 것을 배격하고 있다.





* 더 상세한 내용은 다음 책을 참고 하시길 바람


루터 선집 제 6 권, 컨콜디아 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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