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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08:46:36 조회 : 1428         
   불의한 청지기 이름 : 엄기덕(IP:211.221.155.210)   

할렐루야!!!

주님은혜안에서 평안하신지요?

눅16장의 불의한 청지기 관한 비유를 알고싶습니다.

1. 불의한 청지기가 파면을 당했는데 자기의 앞날을 위해 또 불의한짓을 한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상태에서는 죽어도 그런짓을 못할것같은데, 그불의한 청지기는 그짓을했고 또한 그짓을보고

    예수님은 지혜있다고 칭찬 하신부분,

2.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에서 불의하다는건 다말의 증표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낮아짐의극치)를 예표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라는말씀은 전도를 하라는건가요?

    그런데 전도는 아닌것같은데요,... 잘모르겠습니다.

   작은것에 충성하라는 말씀도 어렵고요...

   전반적인 해석부탁드립니다.

 

 이근호 15-11-17 09:29 
피해 받은 사장님이 자기 돈을 훔쳐간 부하 직원을 도리어 칭찬합니다. 이 세상의 도덕으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이유없이 살아갑니다. 그저 묵묵히 기계적으로 자기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가 왔을 때, 자신의 기능과 상관없이 자기 본색과 관련지어서 반응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인간들의 꼬긱꼬긱 숨겨놓은 자기 본색을 들추어내면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자기 죽음과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을 성립하기 위해서는 ‘죄인’이 발생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이란, 한때 죄를 지었던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무슨 일에 종사해도 죄가 되는 그런 죄인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정상적인 발걸음으로 도심의 화려함에 매료되어서 그 화려함의 일부가 되어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열어놓은 맨홀에 빠지면 갑자가 자기 주변과 자기 신체가 처량하게 변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분주한 일상에서 매여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 “나는 뭘해도 예수님 피 앞에서 죄인맞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사람은 영적 구조가 만들어놓은 맨홀에 빠진 것입니다. 그 안에는 참으로 기이하고 낯선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구원입니다. 이런 경우가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나옵니다. 거기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나옵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심하게 홀로 죽어버리자 남은 자들은 구심점을 잃어버렸고 따라 뿔뿔히 헤어지는 파장 분위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 3자의 모습으로 끼어드셨습니다. 예수님의 허무한 마지막 인생길에 실망을 느끼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성경 말씀이란 반드시 성취되는 겁니다. 메시아는 죽어도 사흘만에 다시 살아납니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숙소에서 그 두 제자들과 함께 식사 중에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아채게 됩니다.

제자들을 경악과 더불어 말씀을 더디 믿는 자로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이론에 불과하고 원칙에 불과하고 실제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개입하는 인생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근거로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되는 기적적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처럼 ‘불의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성도의 모습은 이 세상에 성도가 존재해야 될 이유를 말해주는 겁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찾아들지를 않는 자들은 기존의 인간들이 사고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불의하면 지옥간다”는 주장입니다. “불의한 자를 칭찬해주는 그런 메시아는 있을 수 없다”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예수님을 뒤엎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이유는, 사람이 다급하면 “살고보자” 정신이 도출된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불의한 청지기는 확보하려는 재물은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주인님의 것으로 자기 것을 삼아 버텨보려고 시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님이 원래 의도했던 예상 통로가 됩니다. 이 통로를 따라 주인님의 피가 관통하게 됩니다. 즉 사람은 원래 자기만 살고자 하면서 남이야 손해 보던 죽던 상관없습니다. 이 인간성을 불의한 청지기는 충분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바로 그런 것을 ‘불의한 자’로 분류시켜서 이런 불의자들이 지옥가주므로서 그렇지 않는 자들이 천국갈 수 있는 정당성을 자체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지상에서 의로운 실적들을 많이 적체시켜놓는 일들이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는 구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반면에 천국갈 사람은 이 지상에 자기 몫의 의로움을 전혀 남기지 않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열심히 일할 때는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넘쳐날 때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청지기는 주인님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주인님의 현존 앞에서 그 청지가는 졸지에 불의한 청지기로 내몰릴 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코 자신에게도 자랑스럽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죄 속에서 주인님의 일방적 칭찬으로 인해서 새로운 의로움과 올바름이 탄생합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는 도리어 ‘칭찬받을 지혜’라고 규정해주시는 겁니다. 그것은 불의한 청지기에게 있어 자신의 삶이란 이미 들이닥친 종말을 보여주는 몸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의한 청지기를 앞장 세워서 거만한 바리새인들의 시대 판단과는 너무나 차이나고 대비가 되는 진실된 천국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미워해서 십자가 지게 만드는 세상에서 종말의 의미를 아는 참된 지혜란 바로 불의한 청지기가 적합하다고 보신 겁니다. 그는 “내가 살기 위해서 무슨 수도 다 쓴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님의 재산을 가지고 사는 그 모습이 바로 이 종말의 악한 세대에서 성도가 취한 바른 태도라는 겁니다. 주인님의 재산 속에 불의한 청지가가 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라는 선언 속에 자기 백성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기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 자기 십자가가 곧 예수님의 십자가임이 드러나는 매개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악함 속에서도 의로움을 도출해 내시는 예수님을 친구로 여겨라 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대에서의 악한 자가 소위 선함을 추구하는 자들보다 더 진리를 이해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한다고 여기는 자들만 구원된다고 가르칩니다. 즉 인간 스스로 선함과 악함을 따지고 본다면 결국 예수님께서 내세우는 ‘불의한 청지기’는 당연히 지옥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들이 구원받는다면 결국 예수님의 뜻이란 자신의 죄악된 본색 속에서 십자가 의로움을 발췌하겠다는 작전을 보여주시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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