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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1 21:55:40 조회 : 3284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이름 : 이진(IP:122.37.50.72)   

목사님 안녕하세요?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복음에 대해 새롭게 알기 시작한 성도 입니다

어떻게 복음을 그렇게 깊히 있게 논리적으로 풀어주시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앞으로 계속 말씀을 통해 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안 믿고 잘 못 알고 있는지 더 깨닫게 되길 원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많이 들으셨겠지만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고 하지만 상급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한 모든 행위가

상급이 되지 않습니까?  말라기 3장 16절을 보면 (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 하나님을 경

외하는 자들을 기념책에 기록하여 기념해주신다고 하셨고,  마태복음 10장 41-42절을 봐도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

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

라) 하셨습니다  또 빌립보서 3장 12-14절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

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

라 ) 분명히 상이 있는데...그럼 이것은 복음적으로 어떻게 풀어야할까요? 알려주세요 감사드립니다   

 이근호 12-10-21 23:21 
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 15:1에 보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입니다. 이 상을 위하여 인간이 기대한 상급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 성도가 받는 상은 예수님께서 성도를 대신해서 획득한 그 상급에 참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 내용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설정해 놓은 상급체제를 그대로 예수님이 인용하신 겁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몰랐던 사실은 그 상급을 위해서 예수님의 새언약을 경유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새언약을 성도가 경유하게 되면 그 와중에서 성도는 더이상 자신을 위한 그 어떤 것도 허락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4:20절에 보면 24장로들이 자신들이 썼던 면류관을 하나님 발 앞에 던지면서 반납하게 됩니다. 즉 상급은 소유용이 아니라 구세주를 가르키는(지시하는) 방향성을 갖고 성도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상급에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시키시는 일에 다양성이 있는 겁니다. 그 다양성적인 일을 통해서 상급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각자의 상급은 오직 예수님을 겨냥해서 예수님 발 앞에서 도로 반납하므로서 그 가치를 보여주는 상급입니다.
 이근호 12-10-22 09:02 
마침 십자가 마을에서 어떤 분이 질문한 것이 있어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질의) 목사님! 오늘 저희교회 예배에서 눅 18:1~8절까지 말씀을 듣던 중 1절부터 7절까지는 비유의 한 틀로 이해가 되나, 8절의 후반부에 있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더라' 라는 문맥은
 
앞 7절까지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인 것 같고 연결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1. 8절의 후반부가 앞의 비유와 어떤 연결의 의미인지요?
 
2. 또한,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의미는 문맥상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의 답변)
1.  '人子'로서 예수님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는  지상에서 원한관계를 형성하고 구름타고 오셔서 심판하시는 일관성있는 구원 일정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일정을 증거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이 역할을 하려면 세상이 어떤 구성으로 움직이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반-인자적 속성으로 진행되며 그 속에는 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일정을 의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수난을 당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2. 그래서 믿음이란, 세상이  예수님의 人子역할을 준해서 구성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임청일 12-10-22 15:11 
상급은 소유용이 아니고 구세주를 가르키는 방향성을 갖고 성도에게 주어진다-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쭙고싶은데요 구체적인 십자가 사건속에서 저주성을 발산하고 동시에 용서와 사랑도 발산하다는
성도의 삶의 모습에 대한 이해가 어렵습니다
기존 교회에서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결국 언성만 높아지고 가슴속에는 답답함만
남았는데요 성령받은 참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대처하게 되는 것인가요
질문이 너무 유치하지만 잘 이해해주시고 답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항상 감사합니다
 이근호 12-10-22 17:03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리심 앞에서 '왜 우리 존재는 예수님을 피흘리게 만든 장본인가?"를 생각하면서 범사에 용서가 넘치는 인생인 것을 감사하면 그것이 성령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이근호 12-10-30 19:08 
관심 가져주어서 감사합니다. 유투브 설교는 한달에 4번 나옵니다. 그것은 제가 서울 한 번 올라갈 때마다 가락교회에서 두 개를 녹화하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근호 12-10-31 17:20 
고넬료의 입지는 십자가의 복음이 어떤 내용인가를 비교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설정된 겁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성실함이 예수님의 피 능력을 대신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고넬료는 나름대로 경건하고 나름대로 구제하고 나름대로 신에게 성실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인간들이 나름대로 돈 벌고 사는데 분주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근호 12-11-01 09:33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자기 구원의 확신'에 대한 '확신'을 또 가져야 하고 '자기 구원의 확신을 한 그 확신이 참된 확신이라는 확신을 또 가져야 하고, 그 확신에 대해 더 확고한 확신의 증거를 갖출 마음 준비 태세를 또 갖추어야 하겠지요. 성경에 말씀하시는 확신은 자기 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작업에 자신이 말려들고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 믿음은 항상 '나의 나됨을 내가 야무지게 싸잡아 한다"는 믿음이 아니라 나를 나되게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결과로 인해 믿음 여부의 증거는 오직 자기 만의 독특한 개성있는 인생역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말씀 그 자체를 겨냥합니다. 즉 "나는 이러이러하다"가 아니라 "예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다"는 식으로 고백되는 겁니다.
 이근호 12-11-02 10:06 
요한일서 5:10-11에는 '확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생의 증거에 대해서 나오는데 영생의 증거는 곧 피와 물과 성령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내용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5:16-17에 나오는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이 없어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그 자체를 말하는 겁니다.  성령받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것이 벌써 그냥 죄 안에 줄곧 눌러 앉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나는데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믿어서 기어이 구원받겠다고 설치는 자기 자신을 믿는 자들'입니다. 즉 성령님의 거저 주심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예수를 믿고 또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결국에는 십자가 피 앞에서 눈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의로움과 공로가 무의미하고 죄로 드러나는 것이 본인들이 못견뎌내기 때문입니다.
 이근호 12-11-03 20:05 
신앙에서는 표준과 모델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행하심입니다. 그 모델로부터 출발해보면, 그 어느 인간도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돌릴 위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처지에 있는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안목으로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사람의 몸에서 평생 분출하는 것들, 그것이 죄책감이든 아니면 자유의지든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그 모든 것조차도 예수님 피로 정죄함이 없음으로 판정받는 현실적 환경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구태어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몸에서 나오는 것은 자아로서 제거될 수가 없습니다.
 이근호 12-11-05 17:31 
훈련이란 훈련받을 가치가 있다고 전제하고 실시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 다루심은 죄인으로 다루심입니다. 즉 "내가 왜 십자가에 달려죽어야 할 정도로 너희들이 죄인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제자훈련 방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들어나가시는 성도의 모습을 '제자훈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예수님 증거"라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가 누구를 훈련시킬 권한을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진 12-11-06 22:38 
목사님 질문을 모두 지워서 죄송합니다 제가 좀 쑥스럼을 많이 타서요...칼빈의 5대 교리 중에서 무조건 선택과 제한 속죄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을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로 해석해도 될까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택하시는데는 조건이 없을텐데요 이때'믿음'이라는 요소는 조건없이 신적 은총으로 주어지는 거지요? 믿는 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만 믿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 사람의 어떤 면을 어여삐 보시고 구원해 주시는 경우는 없죠? 청함 받은 자와 택함을 받은 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진 12-11-06 22:50 
그리고 목사님 저는 어느 정도 상급에 대한 의문이 풀렸는데요 아누리 구원은 은혜로만 받는다고 강조하시는 분들도 상급은 너 하기 나름이다 열심히 헌신,충성 봉사해서 기념책에 네 공로를 올려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울사도 께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말씀은 과연 어떤 의도로 쓰신 말씀인가요? 그리고 바울 사도는 당당하게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라 (고전 11:1)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두서 없이 여쭈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성심 성의 껏 답해주셔서 늘 힘이 납니다
 이근호 12-11-07 09:53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육으로 태어나기에 육으로 태어난 것은 당연히 육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은 구원받은 본인도 예상 못한 놀랄만한 기적입니다. 지옥을 통과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 성령님을 통해서 , 구원이란 예수님의 성과와 공로에 준해서만 제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받게 되는 상급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집니다. 이 공로 속에 들어간 사람(즉, 성령을 은사로 받은 자)은 예수님에 의하여 늘 다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다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상급은 예수님의 공로로만 주어지지 결코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4:20에 보면, 예수님 보좌를 둘러싼 20 장로들이 자신들이 받은 면류관을 예수님의 발 앞에 던지면서 "내가 쓸 면류관이 아닙니다"고 반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청함과 택함'의 차이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주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들은 다 택함 받은 민족이다"고 우겼던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아는 자만이 참으로 택한 자"라고 해서 선택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리십니다. 개인의 구원욕구에 근거한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하심을 근거한 선택개념입니다.
 이진 12-11-07 16:05 
네...개인의 구원 욕구에 의한 구원...잘 알겠습니다 목사님 그럼 에배소서 1장 13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께서 인치신다고 하셨는데 인치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요한 계시록의 짐승의 인과 대립되는 성령의 인으로 바도 상관이 없을까요?
 이근호 12-11-07 19:02 
'인'이란 구원될 자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형편에서 구원될 것이라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이 우주는 인간들만 설치는 동네가 아니라 악마도 설치도 예수님과 활동하고 천사도 활동하는 영역이기에 그 영들의 마주침의 결과로 파생된 관계가 '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치심'이란 무엇이 악마로부터 인치신 활동들인가를 제대로 알아보는 영적 싸움터로 세워놓아서 영의 일과 기능을 하게끔 쓰여지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니 구원용으로 간직하라고 주어진 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속적인 업무를 드러내기 위한 인입니다.
 이진 12-11-10 00:42 
목사님...사실 좀 이해가 잘 안됩니다...우리 말인데...제가 지식이 좀 짧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다시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데요...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성령의 일방적인 역사로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그러면 구원을 받은 성도의 일상에서의 믿음은 믿고자하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합니까?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의 의미는 어떤 뜻인가요?
 이근호 12-11-10 01:52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은 우리의 의사를 타진해서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이미 악마의 봉쇄적 권한 아래 갇혀 있는 바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일방적으로 끄집어내어주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로 건너올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2:28-29) 즉 예수님은 도둑이요 악마는 우리의 주인이요 성도는 그 주인집의 가재도구였습니다. 따라서 의논에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침략하는 형식이요 침노하는 형식입니다. 강제로 탈취하는 식으로 믿음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말의 밀고 당기고 협상할 그 어떤 여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예수님의 결정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자기 백성을 '찜'하듯이 해서 그 때부터 그 성도는 자기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을 증거하는 자가 됩니다.
 이진 12-11-19 09:50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서 질문을 올립니다 (요16:8)을 보면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고 하면서 죄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고 의에 대하여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가시는 것이 왜 의가 되는지요?
 이근호 12-11-20 09:10 
하나님을 만나본적도 없는 인간들이 '하나님, 하나님' 운운 하니 하나님께서 직접 진짜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랬더니만 인간들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진정한 본질이 하나님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인간들이 자체적으로 신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거룩과 경건과 의와 윤리와 도덕과 경건심은 모조리 악마의 숨겨진 본색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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