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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06:23:59 조회 : 1293         
   [질문있습니다] 이름 : 한아이(IP:47.145.107.64)   
목사님의 설교말씀(강의 등)을 통해 죄와 악을 요약 정리하자면 -죄란? 사람이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사망)를 말한다. -악이란? 율법의 속박 아래 사는 삶(굴레,짐)이며 아울러 사람이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수고함으로 그 삯을 받아 살아가는 방식(인과율/종의 삶)을 의미한다. 선악과 사건으로 사람은 사망 가운데 있는 죄인이기에 스스로의 힘과 방법으로 죄와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죄와 상관 없는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홀로 숙제를 푸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들었고 또 배웠습니다.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 문제, 즉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9:12, 막2:17, 눅5:31; 19:10, 딤전1:15, 요일3:8). 성경은 죄의 문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짐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선악과사건으로 인해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생명나무로 향하는 길이 원천봉쇄됨으로 구원의 길이 차단되고 말았습니다(창3:24).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사람의 죄값을 대신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율법의 실천 유무가 아닌 그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생명이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기록하였습니다(히10장). 바울 역시 예수님의 피 흘리심(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상태였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성도에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증거했습니다(고후5:18). 이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죄의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악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의 현실로 남아있습니다.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 율법은 더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수고해야 그 삯을 받아 살아가는 삶의 방식(창3:19)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미결된 상태입니다. (인과율에 따라 수고함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악 뿐 아니라 질병,환경,노숙자,테러,성문란,전쟁 등 기타 세상에서 말하는 악의 문제도 해결될 낌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Q1)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죄의 문제(영적인 부분)만 해결하고 악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절반의 성공인가요? Q2) 아니면, 악의 문제(삶의 구조와 생계 등 현실적인 문제)는 예수님이 교회(성도,목사,제자 등)에게 상부상조하여 해결하도록 당부하고 위임한 것인가? Q3) 혹은 악의 문제는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근본적으로 해결될 유보된 약속인가?
 이근호 16-10-06 11:19 
세 개의 질문은 다음의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악(=사단의 설쳐댐)은 재림 때까지 처리가 보류된 것입니까?”

첫 번째 하신 질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죄의 문제(영적인 부분)만 해결하고 악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절반의 성공인가요?”

이 질문에서 특이한 단어가 보이네요.  ‘절반=½’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즉 영적인 부분 ½ 과 현실적 부분 ½, 곧 생존에 불편한 현실세계의 각종 범죄와 저주스러운 자연환경을 ½로 간주해서 ½+½=1 이 비로소 갖추어진다고 믿는 그 제 3의 독립적인 관찰의 자리를 문제 삼고 싶군요.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외부의 따로 마련된 관찰의 자리를 아예 없다고 여기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구원) 욕구마저 하나님 생각하고는 다른 나의 근원적으로 구원되고자 하는 이기적인 죄악된 욕망이며, 그 죄악된 욕망은 배후에서 나를 그런 식으로 조종한 악(=악마)의 심보를 대변하는 마음으로 이미 죄악된 세계의 일부로 참여 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오심이 나를 질곡에서 건져주시려는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우리 자신이 이미 근원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없는 악마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늘에서 누가 오기만 하면 붙들고(=믿고) 나를 이 고생 많은 상황에서  끄집어내도록 해보겠다”는 이기적 마음을 폭로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지 말고 따라서 차라리 베드로처럼 솔직하게 예수님을 배신하며 사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는 천국 백성으로서의 마음입니다. “에이, 예수님에게 은근히 기대했다가 도리어 예수님에게 배신 당했네. 실망이다!”라는 고백을 그냥 그대로 내뱉는 것이 성도로서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에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판단과 결단과 선택과 신앙과 고백과 헌신과 희생과 회개와 기도에 아무런 기대나 희망이나 대가를 갖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주님이 부리시는 종입니다. 제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가짜 신앙인을 색출하는 일에 열심히 활약 중에 있습니다.(눅 22:31) 이 작업을 위해 사단은 생존에 불편함을 안겨주는 환경 조성에서 소홀함이 없습니다. 악은 악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부지런히 악을 저질러야 합니다. 이 활동은 곧 완성차원에서 예수님의 완성을 증명하는 바에 따라 결과로 진행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인간들이 ‘나는 구원받아야겠다’는 이기적 욕심이 곧 이 세상을 더욱 악된 세상을 무르익게 하는 사역임이 폭로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십자가 복음을 흠집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해야 될 천사입니다. 이 일은 결코 미 완성적 일이 아니라 완성적 일입니다. ½이 아니라 1입니다. 따라서 악마라는 천사는 ‘버림받은 피조물’의 모델로서 그 사고방식을 계속 펼쳐야 합니다. 마치 가룟 유다가 자신의 일을 꼭 해야될 제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½적인 현실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세상을 관찰한 제 3의 자리는 없습니다. 구원얻고자 하는 우리 자신들마저 죄악된 짓이라는 사실을 폭로하시는 예수님의 작업에 찬양을 보낼 때, 바로 이런 자만이 예수님의 안목은 지닌 오로지 성령 받은 자만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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