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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3:06:36 조회 : 104         
   [일반] [영국 무정부주의 연구] 김명환 저 헤안(서울:2018)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영국 무정부주의 연구] 김명환 저 (혜안출판사:서울 2018)

무정부주의 사상이 나타난 것은 19세 말 영국에서 두 개의 사회 운동 때문이었다. 하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다. 이것은 정부가 보편주의적인 원칙을 가지고 복지정책에 대해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점진적인 사회주의적 국가를 목표로 삼는 사상이다.

또 다른 사상은 신디칼리즘 사상이다. 이것은 노동자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장악하는 것이다. 선거를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완전히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이다.

페이비언들의 입장에서 국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었고 그래서 국민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가 곧 산업을 통제해한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국민과 소비자가 겹친다고 본다면 '소비자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신디칼리스트들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부 관료들이 위에서부터 산업을 통제하면 이는 엘리트주의로 귀결되면 실질적으로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은 위로부터 지시에 복종만이 하는 기존의 관행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하부의 노동자 조직부터 민주적으로 조직하면서 최상부의 산업 조직까지 차례로 장악되어 하는 것이다. 이들은 페이비언과는 주장과 대비되게 ‘생산자(=노동자)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무정부주의는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의 범주 안에서 이해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은 집단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결별한다. 집단주의적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무정부주의는 개인주의로 나아간다.

자유주의가 깊이 추구되면 될수록 국가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무정부주의에 다가서고 있다.

자유주의의 주장은 이러하다. 민주주의는 본래 억압된 권력,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고 정당한 권력을 세워야 한다는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 보통 선거를 도입한 정치적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거라는 민주 절치를 통해 만들어진 권력도 지배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 하여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일어난다.

보수파가 권력을 잡으면 새로운 억압과 부패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보파가 권력을 잡으면 정당한 권력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면서 새로운 독재가 시작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집에 사로잡혀 자신들이 전체주의로 나간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을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결국 현재의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지 근본적 처방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은 생각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언제 사회계약을 했고 언제 그러한 계약에 동의를 표시했느냐”고 반문한다. 과연 국가권력은 존재해야 할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들은 국가권력에 대한 회의에서 사회적 권력에 대한 회의로 나아간다. 국가권력은 법으로 금기를 설정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만 사회적 권력은 관습으로 금기를 설정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했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와 사회의 지배 즉 법과 관습 그리고 여론에 모두 항의하는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특히 이들이 억압적으로 본 사회적 권력은 남녀 관계를 규정하는 관습이었다. 성과 결혼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사회적 관습은 사회가 행사하는 거대한 권력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국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졌듯이 결혼제도와 성도덕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과학적이고 합리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결혼제도와 성도덕에 대해 검토해 보았을 때,-이들은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의 힘을 믿는다- 결혼제도도 성도덕도 모두 정당한 근거를 결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결혼제도에서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평생 동안 함께 살 것을 서약하고, 평생 동안 배우자만 성관계를 가질 것을 서약하고,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지만 그것은 관습이 부여한 억압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사랑이지만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이 무수히 많을뿐더러 설혹 사랑하는 이유로 결혼을 한다 해도 많은 경우 사랑은 식어 버리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결혼제도는 인간에게 사랑할 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도 타인이 독점할 수 없다. 자의에 의한 사랑도 마찬가지로 타인이 뺏어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처벌하도록 만들어 놓은 결혼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래서 인간을 구속하는 결혼제도 대신에 자유로운 사랑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속박하지도 않고 독점하지도 않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성에 대해 가해지는 여러 가지 규범들은 권력과 함께 탄생한 것으로 이런 규범들에는 모두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그것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일 뿐이라고 한다.

순결, 정절, 간음, 처녀성, 처녀막과 같은 용어들은 모두 성적 억압을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인 용어이다. 이 억압적인 성에 대한 규칙을 매개로 하여 결혼제도가 만들어졌고 이 제도를 강화하는 데 있어 미혼모, 첩, 서자, 사생아 같은 편견에 찬 용어들도 동원되었다.

그리고 이 결혼제도와 성도덕이 서로를 보강하여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인간을 억압해 온 것이다. 그것에서 인간의 성적 욕망은 사랑의 욕망과 함께 억압되고 왜곡되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순결과 정절, 불륜, 간통이란 허구적인 개념을 사회가 강요함에 따라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죽어간 역사 속의 수많은 여성들을 생각해보면, 사회적 권력은 국가권력 못지않게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지금껏 남아 있는 열녀비들은 사회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을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또 다른 특징은 평화주의로 나간다는 것이다.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은 결코 대중의 상호 적대감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는 없으며 모두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나 적대감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무정부주의자들은 발견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이 국가권력을 의심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하나 더 얻게 된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만이 아니라 인간을 죽음과 재앙으로 몰아넣는 주체로서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서 무정부주의자들은 반핵운동과 불복종ㄷ 운동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운동 자체가 지도자가 없는 반(反)-엘리트주의적인 방식으로 움직여 나가면서 평화를 향한 평화적 방법의 운동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세 번째 특징은 자본주의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지만 그 항의점은 집단적 사회주의나 신디칼리즘과는 다르다. 자본이 갖는 ‘독점’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세 번째 특징은 자본주의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지만 그 항의점은 집단적 사회주의나 신디칼리즘과는 다르다. 자본이 갖는 ‘독점’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독점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유재산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으로 획득하는 재산을 반대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독점을 허용하게 되는 것은 합의에 의한 법률이라고 할지라도 정의롭지 못한 재산을 보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재산 제도 속에서 칼 대신 법을 들고 있는 강도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도적과 자본가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한 사람은 비합법적인 도적인 반면 다른 사람은 합법적인 도적이라는 비유를 구사한다. 하지만 국가는 양자를 동일하게 다르지 않았다. 국가는 전자를 처벌하지만 후자에게는 오히려 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가 산업통제권을 장악하겠다든지 노동조합이 산업통제권을 장악하겠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온전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런 식의 모두 공격은 모두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다 해도 그 결과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국가가 경제 영역에서 법률을 만들어 집단주의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자유의 영역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 장악은 또 다른 독점으로 이어진다. 정부만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도 부패하며 노동조합도 부패하며 언론도 부패하며 모든 독점된 것은 다 부패한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개입할 것이 아니라 자본의 독점, 토지의 독점, 노동의 독점. 화폐의 독점과 같은 요소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영역 자체에서 거대 권력을 몰아내고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본 것이다.

달리 말해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시장의 모순을 국가와 같은 또 다른 외부의 힘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경쟁이 살아 있는 진정한 상태로 만든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진보는 권력을 잡고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개인들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에 있다고 이들은 믿고 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애국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게 한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란 의미를 지니지만 실제로는 초월적 실체에 대해 자신을 결합시킬 것을 요구하는 정신이다. 고대로부터 모든 권력자들은 충성심이라는 표현으로 강조해 왔던 정신이다.

황제에 대한 충성이든 왕에 대한 충성이든 당에 대한 충성이든 모두 자신을 추상적 존재에 결합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종류의 정신은 현재의 고통과 희생을 정당화시키면서 아무런 대가없이 이를 인내하게 한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을 동원하였을 때 그런 이런 정신을 잘 활용했다. 노동자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생산을 더욱 높였다. (천주교에서 수녀들의 정신구조가 이런 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국가에 대한 사랑이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는 결과를 낳고 그 결과 집권자를 통치자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 인식되게 만든다. 즉 권력자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국가를 끌고 나가는 사람인 것이다. 결국 애국심은 국가를 매개로 하여 권력자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면 권력 추구의 정신과 삶을 강화한다.

이로서 인간으로서 져야 할 책임과 존엄성은 애국심을 내세운 구호 앞에서 종종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전쟁에서 애국심을 내세운 학살 행위가 일어났으며 고만과 학대의 비인간적 행위들이 애국심 하나로 변명되어 왔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있어 애국심이란 다음과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사랑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배가 없는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이웃과 고향에 대한 사랑이 국가권력을 깨뜨리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존의 권력을 모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붕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자기희생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잘게 깨뜨리는 운동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깨트리는 운동과 영원히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그것은 전쟁에 관한 입장이다. 전쟁을 당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국가의 자국민에게 내리는 처방은 기껏 ‘회피’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비겁한 태도이요 옹졸한 겁쟁이의 마음이요 패배주의적 태도이다.

어떤 세력과 싸우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당할 수 없다 는 주장은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투쟁을 위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될 경우, 무엇으로 사랑을 증명할 것인가? 말로만? 평가로만?

두 번째 문제점은, ‘독점’에 관한 것이다. 국가권력이 사라진다 해서 독점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 안에서 발생하는 독점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누구라도 변호사가 될 수 있고 누구라도 의사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허용한다고 하지만 누구라도 갖고 있는 토지 소유나 사용권의 독점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평)

인간들은 날 때부터 잠재적 무정부주의자들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누구나 그러하다. 인간은, 자신이 신일 거라고 여기는 일에는 눈이 밝다. 악마를 닮았다.

따라서 홀로 초월자 행세를 하고픈 욕망이 내부에서 쉬지 않고 들끓고 있다. 갓난아기라도 예외 없다. 여건이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참고 있을 뿐이다. 때를 기다린다. 결코 누구에게 의존적이지 않다. 타인을 이용할 뿐이다. 그 어떤 힘이 자기를 덮어 씌우는 것에 심한 불쾌감을 갖는다.

바퀴벌레라도 자기 집에 사는 것을 귀찮아한다. 하물며 벌레보다 더 덩치 있는 타존재가 자기만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편해 한다. 자기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해 한다. 노골적으로 말을 안 할 뿐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본심이다. 서로가 마찬가지다. 서로를 볼 때, 신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일인자로 등극될 때까지 소리 없이 경쟁하고 있다. 다소 용감하게 자기 솔직함을 먼저 터뜨려 준 것이 ‘무정부주의 주장’이다.

따라서 모두들 이런 성향들이 잠복되어 있다가 쉬지 않고 이합집산하고 있는 중에 잠시 잠간씩 그 경향들이 사회를 통해서 외부로 삐져나온다. 결국 모든 게 ‘유행’이요 흐름의 양상이다. 용어 채택은 그 유향을 따라잡으려는 핑계일 뿐이다. 인간의 소속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오직 나의 소속이다. “내가 곧 신이다! 그러니 나보고 죄인이라고 하지 말라. 뭐라 하지 말라. 나는 나에게 충실하고 충성하고 최선을 다 할뿐이다.”

모든 인간은 모든 권력을 밀치고 자신만이 영원한 교주요 자신만이 성전이요 매일 아침 자기에게 다짐하고 자기 몸에 참배하고 출근한다. 이러니 무슨 수로 자기 자신이 영원한 죄인인 것을 알겠는가!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요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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