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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6 09:47:27 조회 : 84         
   [공지]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안내 및 교재 이름 : 우리교회(IP:119.18.83.168)   

일 시: 2019년 1월 13일(일) ~ 15일(화)

장 소: 대전 유성유스호스텔 (전화 042-822-9591)

(대전시 유성구 계산동 671-4)

강 사: 이근호 목사

주 제: 아가 강해 (완전한 사랑)

회 비: 일반(중학생 이상) 10만원

아동(유치, 초등)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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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1월 5일까지 해당 지역 담당자께 신청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역 담당자께서는 6일까지 알려주세요. (명찰 제작 및 방 배정을 위해서

성명, 성별, 직분, 교회명 등을 파악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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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기지역 : 이미아 성도 (010-9998-4171)

부산 경남지역 : 박병규 목사 (010-2323-3571)

대구 경북지역 : 이상규 집사 (010-2685-8211)

광주 전라지역 : 김을수 집사 (010-2627-7800)

대전 충청지역 : 김종인 집사 (010-8808-7111)

강원 지역: 정인순 목사 (010-2676-6823)

울산 지역: 김병만 집사 (010-4379-1471)

그외 지역: 서경수 목사 (010-2962-7490)

 

2019년 십자가 마을 겨울 수련회 교재

완전한 사랑

- 아가 속의 그리스도-

Ⅰ 서론

1. 충동으로서의 사랑

인간은 두 가지 상이한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첫째는 감성충동 또는 감각충동이라 불리는 충동이다. 이 충동은 인간의 물리적 현존 또는 감각적 본성에서 비롯된다. 감성충동은 자연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인간을 시간의 범주, 즉 변화라는 틀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인간을 물질로 만드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감성충동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간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생성하는 세계와 직접적으로 마주한다.

둘째는 형식충동이다. 감성충동과 대비된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적 본성에 기원하는 것으로 영원한 것을 고대한다. 이 충동은 시간 속에 흩어진 것들을 전체로 묶어 최종적으로는 시간과 변화를 추방하여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

형식충동은 인간의 절대적 존재에서 또는 그의 이성적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그의 존재양상의 다양성에 조화를 도입하고 상태의 온갖 변화 속에서도 그의 개성을 주장하게 한다.

이 개성은 절대적이고 불가분의 통일체로서 자기 자신과 절대로 모순적일 수 없기 때문에, 혹은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개성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충동은 자기가 지금 결정한 것은 영원히 그렇게 결정하며 늘 자기를 재촉한다.

이 충동은 자기중심적으로 시간을 없애고 변화를 없애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이 필연적이며 영원한 것이 되기를 고대하고 그것을 곧 진리와 정의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감성충동과 형식충동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띠고 있기에 서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 그 타협책이 ‘자신을 잊고자’하는 놀이로 등장된다. 자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충동이 일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놀이충동’이다.

2. 놀이로서의 사랑

놀이충동은 두 충동을 경합하지 않고 결합시킨다. 시간 안에서 시간을 없애기를 추구하며 절대적 존재와 생성을 결합하고 정체성과 변화를 연결하기를 추구한다.

놀이충동은 심성의 물리성과 도덕성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충동의 강요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고 자한다. 그러면 인간은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렇듯 놀이충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기존의 물리적 한계와 도덕적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끌림이다.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도취’다. 아름다움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놀이는 노동이 아니다. 생존의 의지를 놔버리는 것이다. 그냥 맡기는 것이다. 이익과 유용성을 계산하지 않는다. 노동이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이에 반해 놀이는 생물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놀이를 유지하기 위한 외부적 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외적 강요가 전제되고 노동의 고통은 생존을 위한 약속의 내용이 클수록 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놀이는 대부분 생존을 약속하는 결과의 이득과는 거의 무관하다. 놀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생존을 위한 물질적 보상보다는 놀이는 몰입하는 것이고 주관과 객관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놀이에서는 왕복운동(이리저리운동)이 염두에 두어지는데, 이 운동은 자신이 거기서 끝나는 그런 어떤 목표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놀이에서 더 중요한 것은 놀이의 목적이 아니라 놀이의 과정, 즉 이리-저리의 반복운동 자체이다.

놀이로서 동원되는 의지는 주체에 묶일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사물들이 시작되었다가는 끝나고 부서졌다가는 다시 결합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길’로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반복적으로 마감되고 그 마감된 것을 반복적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것이다.

놀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언어학적으로 능동과 수동의 중간인 동사를 뜻하는 ‘중간태적 의미’라는 개념을 도입된다. 중간태는 말 그대로 능동과 수동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 동사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 또는 어느 때에 활동한다”, “어떤 것이 일어난다”, “어떤 것이 진행 중이다”같은 것들이다. 그냥 한국의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를 생각하면 쉽다.

또한 놀이가 놀이하는 사람을 놀이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연기자와 관객의 구별이 모호하다. 결국 둘이 똑같이 마주 보는 의미내용을 얻게 된다. 이로서 놀이는 하나의 형성체를 만든다.

놀이가 형성체로 변화한다는 것은 놀이에서 표현되는 것이 꾸준히 참된 것으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변화’와 ‘변경’을 구분해야 한다. 변경은 동일자(실체)의 속성은 변할지 모르지만 동일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데 반해, 변화는 그 이전의 동일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숨겨진 진리란 바로 주객이 사라진 상황에서 놀이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난 진리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되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진리란 놀이 속에서 ‘대화’를 통해, ‘교제’를 통해 발생한다.

놀이는 자아 통일성을 넘어서기에 자기 염려함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나타난다. 순간과 영원을 자신을 마주 보게 한다. 놀이는 의미·진지함·목적·의미에서 일탈하는 것으로서 선·악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삶과 죽음마저 놀이를 통해 넘어선다.

그 너머선 세계가 사랑의 세계다. 사랑은 나를 넘어선다. 사랑은 인간들이 구성한 공간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재(不在)의 영역이며 거기에는 일체는 아무런 목적과 목표, 원인과 결과, 의미와 가치와 상관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사랑은 붙잡을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없는 영역에서 사랑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 부재의 영역은 존재의 세계와 대립되는 무의 세계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 되고 존재를 시작하게 바탕으로서의 무의 세계다.

그래서 사랑은 다시 이 세계에 참여하는 놀이다. 이 사랑이 나타날 때 어떻게 나타날까? 그것은 바로 ‘상징’으로 나타난다.

3. 상징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언어세계의 한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곧 사람의 한계요 자연의 한계다. 상징이란, 원인을 모르고 결과만 보고 있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고백을 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언어로 전달하므로 서 언어 속에서 상징이 발생하도록 하셨다. 인간의 언어에는 사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애틋함이 서려있다. 인간 정신세계의 끝은 상징으로만 표현된다. 상징이 최종 마감재다. 인간 세계는 어떤 식으로 묶여있나? 언어체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 11:6-8)

언어의 쓰임의 규칙은 한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고 그것은 그들 문화를 전승하는 후손에게 미리 주어지는 경우가 많고. 또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는 이방인에게는 언어놀이의 규칙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이방인은 그 언어의 규칙을 알고 따라야만 언어놀이에 참가할 수 있으며 놀이 공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바벨탑 건축의 경우를 상상해본다.

건축에서 미장이와 조수 사이의 언어는 벽돌, 기둥, 석판, 들보라는 낱말로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이지만 언어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적절한 맥락에 낱말이 올바르게 사용하는 놀이가 가능하기 조수는 먼저 각각의 낱말이 쓰이는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건축가가 벽돌을 요구할 때 석판을 가져간다면 그는 벽돌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완전히 배웠다고 볼 수 없다. 또 미장이가 “벽돌 세 개”라고 외치면 조수는 벽돌 세 개를 가져가야 하고 미장이가 여러 종류의 벽돌 중 “이 벽돌 세 개”라고 외치면 조수는 미장이가 원하는 것을 가져가야 한다. 또 미장이가 “저기 있는 석판 두 장”이라고 외치면 조수는 미장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때 이들 사이에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미장이와 조수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물’, ‘개수’, ‘방향’ 등의 가장 단순한 형태의 언어활동을 통해서도 그들 사이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언어놀이’다.

삶은 이처럼 언어놀이로 구성된다. 이처럼 언어놀이에서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의 규칙을 그저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을 이해하고 행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규칙은 단순히 개별자가 생각한다고 해서 규칙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은 언제나 공적이다. 즉 경험은 지극히 사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즉 언어는 언제나 타자를 향해 있다. 그래서 사적 언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규칙은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즉 놀이의 규칙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시작되고, 수정되고, 변한다. 그래서 놀이의 규칙이 삶의 양식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놀이의 장(場)에서 놀이자들이 상호적으로 놀이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행위의 패턴이 생길 것이고 이런 행위의 패턴들 중에서 적합한 것과 부적절한 것이 구분될 것이다. 전자들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오래가는 것과 반복적인 것들이 놀이의 규칙으로 정립되어 놀이의 장을 구성한다. 그런 행위 패턴은 놀이자들에 의해 합의 수용되고 인지되는 일정한 행위 패턴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그 놀이자들이 놀이과정에서 실제로 오랫동안 수행하여 익숙해진 행위 패턴이다. 놀이의 특징은 외부의 지원 없이도 자율적인 활동공간이나 규칙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질서, 그리고 공동체의 규범을 배우고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문화의 뿌리가 언어놀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뜻한다.

개념이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평균적인 특징을 찾는 과정이다. 즉 개념을 통한 세계의 이해는 심층적이기보다는 표피적인 것에 머무른다. 이에 반하여 몸에서 비롯된 기쁨, 슬픔 등의 감정들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전한다.

여기서 도약이 일어난다. 언어는 어떤 사물을 전적으로 상이한 영역으로 전이한 것이다. 이 전이가 도약이다. 언어는 대상, 실체 또는 물자체와 필연적인 관계가 없고 단지 그것을 우선 신경 자극에 그리고 표상으로 종국적으로 소리로 전이한 것이다. 언어는 우선 사물→신경 자극→표상→소리→개념으로 전이되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단어나 개념으로 발전한다. 전이 사이의 필연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관계라는 것도 인간의 습관에 기이한 것이다.

이러한 도약이 상징이다. 자연에서 유발된 자극이 상징 안으로 흡수가 되고 그 사물들의 관계가 언어적 표현으로 보전하게 한다. 자연에서 발산된 계시와 인간의 몸과 만나 인간 몸에서 새로운 계시의 양상이 발산된다. 즉 자기에게 파묻힌 일상 때문에 방해받는 것은 여분의 흐름이다.

여기서 상이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 것이다. 이 상이한 영역을 연결하고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인간의 상상의 능력이며 그 결과가 상징이지만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는 언어로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상징이란 일종의 ‘다름’이며 ‘단절’을 나타낸다.

언어 세계의 ‘허구’는 ‘사랑’이라는 계시의 발생으로 인간 충동의 한계가 드러난다.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불충분성은 멈출 수없이 터져 나오는 감정적 충동을 놔주어야 한다. 감정은 도취이다. 그래서 사랑도 도취이다. 인간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구현하고자 할 때 즉 창조하고자 할 때는 언제나 도취가 함께 한다. 도취가 없다면 감동을 얻을 수 없다.

도취가 힘의 징후며 상징이다. 도취는 힘을 동원시키는 동력이다. 사랑은 특정한 목표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사랑은 나를 나에게서 벗어나게 한다. ‘나’에게서 ‘다른 나 ’에게로. 사랑은 쉴 새 없이 증식되고 창조적이다. 천국이 ‘단절’ 너머의 세계다. 인간이 감히 손댈 수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세계다. 그 어떤 비난이나 분노나 공포가 따라잡지 못하는 딴 세상이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아가 1:5)

Ⅱ. 본론

1. 구성

1: 2-4 신부

그의 입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왕이 나를 내전으로 데려다 주셨네

1: 4 합창단

우리는 당신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1:5-7 신부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예루살렘 딸들이여

당신은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

1:8 합창단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1: 9-10 신랑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목이 어여쁘구려

1:11 합창단

우리가 은구슬 박힌 금줄을 그대에게 만들어 주리라

1:2-2:7 신부+신랑

우리의 잠자리로 푸르답니다.

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2:8-3:4 신부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내 연인이 나에게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만나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만났네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내 어머니 집으로.

3:5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줘요

그 사랑이 원할 때까지.

3:6-11 합창단

보라, 솔로몬의 가마를!

나와서 보아라, 시온의 딸들아,

솔로몬의 왕과 그 관을.…

혼인의 날에,

그의 마음이 기뻤던 날에.

4:1-15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연꽃들 사이에서 풀을 뜯는

한 쌍의 젊은 사슴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

그대는 나를 미치게 하오, 그대의 시선 하나만으로

신부여, 그대의 입술은 생청을 흘리고

그대의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다오

그대는 닫힌 정원, 나의 누이 신부여,

그대는 닫힌 우물, 봉해진 샘.

4:16 신부

오너라, 마파람!

나의 정원이 숨을 내쉬게

5:1 신랑

나의 누이 신부여, 나의 정원으로 내가 왔소.

5:2-8 신부

내 연인이 문을 두드려요.

“네게 문을 열어 주오, 나의 누이”

옷을 이미 벗었는데

어찌 다시 입으리까?

나의 연인에게 물을 열어 주려고 내가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는 연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나는 넋이 나갔네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요!

5:9 합창단

그대 연인이 지닌 것이 무엇인가

다른 여인보다 나은 것이?

5:10-16 신부

나의 연인은 분부시게 하얗고 붉으며

수천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눈에 띄지요

머리는 순금

머리채는 까만 까마귀

눈은 우유로 목욕한 비둘기

뺨은 꽃밭

입술은 연꽃

손들은 금반지들

몸통은 상아 조각

다리는 하얀 대리석 기둥들

그의 입천장은 달콤하고

그이의 모든 것이 멋지답니다.

나의 연인은 이렇답니다.

6:1 합창단

왜 우리는 당신과 함께 그들 찾고 있는가?

6:2-3 신부

나는 내 연인의 것, 그리고 내 연인은 나의 것

6:4-12 신랑

나의 애인이여

예루살렘처럼 매력적이고

진을 친 대처럼 두렵고

그대의 머리채는 염소 떼 같고

그대의 이는 세척장에서 올라오는 어미 양 떼 같다오

그대의 볼 석류의 쪼개진 틈

나의 비둘기는 오직 하나뿐, 나의 티 없는 여인

6:13 합창단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6:14 신랑

나는 알지도 못했는데, 나의 갈망이

나를 나의 고귀한 민족의 병거들에 태워 갔네

7:1-4 합창단

돌아보세요, 우리가 그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7:5-9 신랑

그대의 두 젖가슴은

한 쌍의 젊은 사슴

그대의 목은 상아탑

그대의 두 눈은 성문 가에 있는 못

그대의 코는 살피는 보초와 같구려

그대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그대의 머리채는 자홍포

그대의 키는 야자나무

그대의 젖가슴은 야자 송이

나 야자나무에 올라 그 송이를 붙잡으리라

그대 코의 향기는 사과 같았으면

당신의 입천장은 좋은 포도주 같았으면….

7:10-8:3 신부

그이의 갈망은 나를 향하네]

오셔요, 나의 연인이여,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마을 덩굴 사이에서 밤을 지내요.

거기에는 나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아, 당신이 마치 오라버니 같다면

내 어머니의 젖을 함께 빨던!

누구의 경멸도 받지 않고

나 당신에게 입맞춤할 수 있으련만.

8:4 신랑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그대들을 맹세하게 하니

왜 사랑을 방해하려 하나요, 왜 뒤흔들려 하나요

그 사랑이 원하기도 전에?

8:5 합창단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연인은 누구인가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

8:6-7 신부

사과나무 아래에서 나는 당신을 깨웠지요,

거기에는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잉태하셨답니다.

거기에는 당신을 잉태하고 당신을 낳으셨답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기에

질투는 저승처럼 집요하기에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들로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

8:8-9 합창단

우리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네, 조그만 누이

아직 젖가슴도 없다네

누가 구혼이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 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8:10-12 신부

나는 성벽

내 가슴은 탑과 같아요

하지만 나는 그이의 눈에서

평화를 발견한 여자처럼 되었지요.

8:13 신랑

친구들이 그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구려

나도 그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8:14 신부

나의 연인이여, 서두르셔요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발삼 산들을 넘어 서둘러 가셔요.

2. 간략한 테마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 것” 8:6 이것이 아가의 핵심이다. 아가에는 묘한 긴장과 갈등이 깔려있다. 금방이라도 같이 만나 재미나게 살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일이 잘 성사가 되지 않고 간장을 태우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된다. 여기서 솔로몬이 우리들에게 나타내고 싶었던 면은 무엇이겠는가?

사랑이란 어떤 난관이 온다 할지라도 중도 포기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어디까지 사랑을 끌고 가느냐 하면은 죽음과 비교되는데 자리까지 데려간다. 즉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느냐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를 끊을 수 있는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분명히 한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그 감정은 결국 예루살렘의 온 처녀들까지 개입시키게 된다. 이 사람들의 사랑놀이가 예루살렘의 화제꺼리가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그것은 솔로몬 왕의 이미지를 쇄신케 했을 것이다. 왕을 사랑의 최종 치로 보게 하는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의 소유자! 한번 사랑한 여인을 신분과 체면과 상관없이 끝까지 따라가서 기어이 자기 소유로 삼으시는 분으로서의 왕(8:6/6:3/2:16) 자신의 모든 영광과 아름다운 것을 함께 할 용의가 되어 있는 왕!

여인을 사랑하되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왕! 스스로 찾아가고(5:2) 또 안보이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왕!(6:3) 이 모든 것이 다윗언약의 상대자요 계승자로서의 왕이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진행이다. 따라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영원한 왕은 이 사랑의 결정체로서 이 땅에 나타나실 것이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계 21:9)

Ⅲ. 결론

왕과 낯선 개인의 등장. 감당 못할 상호 이끌림을 의해서 언약에 의한 새로운 생명력이 출현하는 과정을 묘사한 글이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상대의 호감에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 접근하다가 점차 자기 존재성이 일깨워진다.

사랑에 의한 일깨움이다. 생명은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자극했다. 왕의 마음은 그 아름다움에 해산된다. 왕은 예루살렘의 찬양대의 인도를 받아 사랑하는 자를 향한 약속된 생명을 쏟아낸다. 그 안에서 예루살렘 백성들은 죽음보다 강한 생명의 축제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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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 어떤 것도 죽음을 넘어설 수는 없는데 그래서 어떤 개인도 개별성을 극복할 수 없다. 언약이 없는 세상 사랑은 비극적 운명으로 끝난다.

언약의 등장은, 개인을 위한 사랑을 용납하지 아니한다. 개인의 일상은 죽음의 협박 안에 놓여 있다. 그 죽음에서 도피하고자 사랑을 원한다. 결국은 파탄으로 끝난다.

그러나 언약의 왕의 사랑은 다르다. 언약적 사랑이 아니면 삶과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사랑으로 견주지 않으면 세상이 허상임이 알 수 없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들은 사랑을 배신했고 주님의 사랑에서 인간을 배제시켰다. 여기서부터 세상은 ‘자기를 위한 사랑’으로 차고 넘친다. 이 사랑은 심하게 뒤틀려져 있고 혈육적이다. 궁극적으로 자기 혈족으로 되돌아온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는 벽에 부조된 조각품처럼 벽 자체가 부서지지 않는 한 벽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몸과 사랑의 괴리현상은 창조주와의 끊어짐을 나타난다. 진정한 사랑이 접근하면 몸에서 강력한 반발이 일어난다. 몸에서 발산되는 괴이한 상태,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저주요 미움이다.

복음과 무관한 사랑이 가짜 사랑이다. 복음은 이 땅에서 죽음으로 등장한다. 죽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나를 위한 것’은 모조리 부끄러운 짓이다. 이 부끄러운 짓이 ‘사랑’이라 이름으로 위장된다.

완전하고 순수한 사랑이라면 ‘십자가 사건’이 터져 나와야 한다. “도장처럼 당신의 심장 위에 지니셔요”(아가 8;5-7)

진정한 죽음을 보여준 분과의 합일체를 낳는다. 이미 죽었던 분과의 일체성, 곧 하나이다. 이제 죽어도 상관없이 된 것이다.

몸이 없이도 서로 보이고, 들리고, 만질 수 있는 사랑. 이것이 언약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롬 6:4)

부록

육적 사랑의 한계 두 가지 경우

[거짓말]

-김진룡 작사 -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

세상의 모든 거짓말 다 해놓고

행여 나를 찾아와 있을

너의 그 마음도 다칠까

너의 자리를 난 또 비워둔다

이젠 더 이상 속아선 안되지

이젠 더 이상 믿어선 안되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다시 한 번만 더

나 너를 다시 한 번만 더

너에게

나를 사랑할 기횔 주어본다

어떤 사랑으로

나의 용서에 답하련지

또 잠시 날 사랑하다

떠날 건지

마치 처음 날 사랑하듯

가슴 뜨겁게 와 있지만

난 왠지 그 사랑이 두려워

오직 나만을 위한 그 약속과

내 곁에서 날 지켜준다는 말

이번만큼은 제발 변치않길

[남자라는 이유로] - 김순곤 작사-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말 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저마다 처음인듯 사랑을 하면서도

쓰라린 이별 숨기고 있어도

당신도 그런저런 과거가 있겠지만

내 앞에선 미소를 짓네요

언제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언제한번 그런 날 올까요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울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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